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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관계 단절

Dlogin 2020. 3. 14. 04:53

이전에 나는 핸드폰 번호를 바꿨다는 포스팅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은 그때의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그리워하는 등 뒤끝작렬하거나 내 선택에 대해 후회하여 쓰는 글이 아니라는 걸 미리 밝혀둔다. 그냥 이전에 내 생각을 정리했던 글을 보다가 이 글은 내 공간에 남기고 싶어서 업로드했다. 물론 누군가가 보고 조금은 공감해주면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이제 내 카톡에 남아있는 사람은 50명 남짓이다.  이들 모두 카톡아이디 뿐만 아니라 '번호'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지내는지 대략 알고 있으며 바쁘지만 서로 조금씩 안부를 묻고 지내는 사람들이다. 이제 내 목록에는 그런 관계들만 남아있다.
 
이중에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만난 사람은 2명이다. 다만 이 둘 중에 내가 통솔하던 부서의 부하직원은 없다. 나는 이전 회사에서 만난 부하직원들 누구에게도 내 바뀐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사람 사는 게 다들 비슷비슷 할 테지만 이전 회사에서는 관계가 괜찮은 사람도, 별로인 사람도 많았다. 아무래도 내가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위치였다 보니, 내 진심을 몰라주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았던 거 같다. 하지만 그들 중엔 내 마음을 헤아려주고 내게 힘을 보태주고자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나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관계를 끊었다. 대부분 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을 테지만 어떤 사람들은 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어느 날 소리 소문도 없이 한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니까.  

왜 관계를 끊었냐고 물어본다면 단번에 대답할 수 없다. 이유는 복합적이니까. 그래도 떠올려보면 '피곤해서'가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당시 내 부하직원들은 대부분 사회초년생이었고 인간적으로 착했다. 그래서 사적으로 알면 누구나 사랑받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사회에서 이들을 만난 나는 너무나 괴로웠다. 내게 몰려오는 끊임없는 고충 상담, 그들의 덜 성숙한 업무태도, 성장하고 싶다면서도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달콤함을 맛보길 원하는 정신상태 등은 하루하루 내 기를 빨았다.

쓸데없는 소문도, 불필요한 면담도 피곤했다. 사실 나는 일일이 소문에 신경쓰는 타입이 아니었다. 근데 사회생활을 해보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더라. 신경 안 쓰려고 해도 면담에서 무례하게도 (업무와 관계없는) 소문의 진실을 알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을까. 

나에 관련되지 않은 소문도 성가셨는데, 나와 관련된 소문은 더더욱 귀찮았다. 내가 누군가를 칭찬해서 다른 동료가 시기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고 업무적으로 조금 비판했던 부하직원과의 일이 과도하게 부풀려져 엉뚱한 악담을 듣기도 했다. 사실 이거 외에도 정말 별별 이상한 것들이 많았는데 생략하겠다. 어쨌든 굳이 해명하지 않으면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때문에 내 이미지는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했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들을 상대하는 피곤함도 여길 벗어나야겠다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상하고 잘못했단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이런 일과 사람들은 어디에도 있을 테니까. 그냥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내가 적응을 못하는 거라 인정한다. 통솔할 깜냥이 되지 않는데, 누구와 일을 하겠는가. 혼자 일하는 능력을 키워야지.

처음엔 나를 아껴주고 좋아해줬던 사람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무 생각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을 내 사적인 영역으로 계속 데려가고 싶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그들은 나와 이야기를 나눠도 '이전 회사 이야기'를 뗼 수 없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나는 업무 영역 안에서 그들에게 아낌없이 줬으니 후회도 없고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다. 


그들에게 지금쯤 나는 이상한 사람 중 하나일지 모른다. 무리 중 한 명이 자리를 비우면 욕 먹는 게 사회의 속성이기도 하니까 나는 어디선가 신나게 술안주가 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후회는 없고 신경 쓰이지 않는다. 현재 나는 100% 만족 상태다. 뭐.. 그 사람들 깜냥과 수준이 거기까지여도 이제 나랑 뭔 상관이 있나. 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있을지언정, 그것 또한 별로 감흥이 없다. 그냥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잊혀지고 싶다. 앞으로도 쭉.

나중에 우연히라도 보면 최대한 어색함이 드러나지 않게 인사는 웃으며 할거다. 하지만 다시금 번호를 주고받진 않으려고 노력할 것 같다. 정말 대단한 인연으로 계속 사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관계가 되지 않는 이상, 끊어진 인연은 섣불리 잇고 싶지 않으니까. 

단절되었거나 단절된 모두 혹여나 이 글을 본다면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우리 그냥, 우리가 어땠는지 이제와서 별 고민은 하지 말고 서로 잘 맞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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